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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앵서 :

피살된 금용학원 이사장 김형진씨는 평양태생으로 해방 뒤 혈열단신으로 월남한 뒤에 은 고생 끝에 포목상으로 자수성가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장한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장한식 기자 :

갖은 고생 끝에 포목업으로 자수성가한 부동산 부자. 어젯밤 72살의 나이로 비명에 간 김형진씨 입니다. 평양태생인 김씨는, 해방 후 남쪽으로 온 뒤 다른 월남인처럼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6 . 25 당시엔 군 특수부대에서 유격대 활동을 하는 등, 젊은 시절은 험난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면했던 김씨는, 동대문 시장에서 포목 업을 하면서부터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김씨는, 번 돈을 부동산에 차곡차곡 투자했고 땅값 상승에 힘입어 순식간에 부동산 부자로 더 올랐습니다. 8만여 평에 이르는 용인의 농장 등,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수백억 원대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이 같은 재력을 바탕으로 교육 사업에 적극 진출했습니다. 지난 81년덕원 여중고 재단인 금룡학원을 인수해 이사장에 취임했고 지난 91년에는 덕원예고까지 설립해 교육가로서의 면모를 갖췄습니다. 김씨는, 사회활동에도 열심이어서 지금까지 이북5도민의 평양시 명예시장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아 왔습니다. 그러나 외부인의 원한을 살만 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말입니다.

KBS 뉴스, 장한식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