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대 육상부도 가혹행위”…청소·빨래 전담에 두발 1.5cm 제한_포커 페이스 크리스 딸 가사_krvip

“한국체대 육상부도 가혹행위”…청소·빨래 전담에 두발 1.5cm 제한_루바베트 공식 홈페이지_krvip

고(故) 최숙현 선수의 사망 사건은 체육계 내 폭력 등 부조리와 인권 침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체육계 내 부조리는 비단 실업팀뿐 아니라 대학 운동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과 '단합', '전통'이라는 이유로 수없이 많은 가혹 행위가 지금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내 유일 체육 국립대학인 한국체육대학교 육상부 역시 수년 동안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가혹 행위를 저질러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청소, 빨래는 1학년 전담"...훈련 마치면 선배 '마사지'까지

지난해 한국체대에 입학한 A 씨는 곧장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육상 종목 선배들과 함께 지내는 숙소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의 나날이었습니다.

숙소는 2인 1실로 선배와 후배가 짝을 이뤄 한 방에서 지냈는데 1학년 학생들은 자신이 지내는 생활관뿐 아니라 모든 선배의 방 청소를 전담해야 했습니다. 청소에 대한 지시는 아침저녁 시도 때도 없이 이뤄졌습니다.

육상부 선수들의 단체 대화방. 선배들이 청소를 지시하고 있다.
온종일 고된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마사지를 해줘야 했습니다. 얼음 가져오라는 지시가 내려지면, 즉각 준비해 선배들의 지친 근육을 후배들이 풀어줘야 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체대에 입학한 A 씨는 "선배들은 그야말로 손발이 없는 수준으로 모든 걸 후배들을 시켰다"며 "청소, 빨래뿐 아니라 심부름 등 1학년들이 모든 것을 다 감당해야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자기 전 휴대전화 수거"...머리카락 1.5cm 길이 제한

후배들의 생활 전반에 대한 통제도 극심했습니다. 모든 학생은 자기 전에 점호를 마치면 휴대전화를 일제히 주장에게 제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훈련이 마친 뒤에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여름이 되면 일괄적으로 1, 2학년 선수들은 머리 길이를 1.5cm까지 잘라야 했습니다.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선수는 이런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따라야 했습니다. 머리가 기르면 선배들은 자를 들고 다니며 머리 길이를 재고, 즉시 자르라고 명령했습니다.

평일, 주말할 것 없이 1학년 학생들은 24시간 통제받았습니다. 기숙사 밖을 나갈 때도 일일이 보고해야 했습니다. 취재진이 육상부 단체 대화방을 살펴본 결과, 1학년 학생들은 친구와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병원을 가는 등 기숙사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일일이 선배들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현재 뭘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수시로 물었습니다.

육상부 선수들의 단체 대화방. 후배들은 외출 보고를 하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위치를 묻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만약 1학년 중 훈련 중에 실수하거나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면 즉시 전체 '집합'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 즉시 전부 모여야 했고, 실수한 후배에게는 '머리 박기' 체벌을 내리고, 동급생들에게는 외출 금지 조치했습니다.

A 씨는 "소위 '내리 갈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4학년이 집합해서 혼내고, 다시 3학년이 집합시켜서 혼내고, 머리 박기 시켰다"며 "욕설은 일상적이고, 화나면 우리를 세워두고 물건을 집어 던졌다"고 털어놨습니다.

"못 버티겠으면 나가라"...인권위 "부당 행위 실태 조사해야"

A 씨는 연일 계속되는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그만두기 몇 달 전, 지도 교수에게 이런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도 요청했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A 씨는 "교수는 '너희가 버텨야 한다. 못 버티겠으면 나가야 하는 거다. 청소 빨래 같은 잡일은 당연히 너희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이런 괴롭힘은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인생 전부이던 운동을 결국 포기했고, 학교에 도움을 받지 못하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인권위는 A 씨뿐 아니라 동료 선수, 학교 관계자 등을 조사한 결과, 이 같은 피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담당 지도교수는 인권위 조사에서 "후배들이 빨래나 방 청소를 전담하는지 몰랐다"며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자기 전에 휴대전화를 제출하는 것은 관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인권위는 "1학년 학생들이 면담하면서 건의사항을 작성해 교수에게 제출한 것을 보면 몰랐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관행이라는 이유로 1학년 학생들에게 고충을 들었음에도 어떠한 개선이나 시정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인권위는 한국체대 측에 인권교육을 하고, 부당 노동 강요와 사생활 침해 등 부당 행위가 있는지 실태를 조사해 개선 조치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또, 담당 지도교수에게는 특별인권교육을 수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유명무실한 설문조사"...변함 없는 체육계 부조리 문화

인권위는 지난해 1월 조재범 코치에게 지속해서 성폭력을 당해왔다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심석희 선수의 폭로를 계기로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꾸리고 대대적인 실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체육계 피해 실태를 알릴 수 있었지만, 실태 조사가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데 그칠 뿐,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다 보니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물론, 사안에 따라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인권위에서 수사를 의뢰하지만, 실제로 고발 등 조치로 진행되는 경위는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인권위가 한창 체육계 내 부조리를 조사하던 지난해에도 여전히 이 같은 가혹 행위가 진행된 겁니다.

취재진이 A 씨가 포함된 단체 대화방 4달 치 내용을 확인한 결과, 수시로 심부름을 시키고, 집합시키고, 사생활에 간섭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의 말처럼 '관행'처럼 굳어진 듯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단순 조사가 아니라 신고와 처벌을 강화해 체육계 내 부조리가 사라질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