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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일 막 오르는 교향악축제..."세계 최대 규모 관현악 제전"

올해 4월에도 변함없이 찾아온 한국 클래식계 연례행사, 바로 교향악축제입니다.

1989년 예술의전당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처음 열린 교향악축제는 해마다 국내 20개 안팎의 오케스트라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관현악 제전으로, 코로나19 유행 초반이었던 2020년을 포함해 올해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려 왔습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1년 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뽐낼 수 있고, 협연자는 검증된 무대에서 대곡을 연주할 수 있고, 관객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연주를 감상할 수 있고, 평론가들은 국내 음악계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사랑받는 국내 대표 클래식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0년부터 한화그룹이 단독으로 후원해온 점도 교향악축제가 전통과 권위를 축적해올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힙니다.


■ 전국 20개 오케스트라 참여...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연주 감상할 기회

올해 교향악축제는 4월 2일 개막해 4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진행되며, 전국 20개 오케스트라와 20명의 지휘자, 22명의 협연자가 참여합니다.

총 20차례의 공연 가운데 어떤 공연을 선택해야 할지, 올해 전국의 오케스트라들은 어떤 곡을 선택했으며 지난해와 다른 특별한 유행이나 흐름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올해는 '쇼스타코비치' 뜨고 '말러' 저물고

우선 올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 많다는 점입니다.

2일 개막 공연을 맡은 부천필하모닉이 장윤성 지휘와 임지영 협연으로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바로 다음 날인 3일 유광이 지휘하는 청주시립교향악단은 작품의 인지도에 비해 실연을 접하기 어려운 교향곡 10번을 선보입니다.

스탈린 치하에서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견뎌야 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사후 완성한 이 교향곡에서 오랜 세월 억눌러온 자아를 유감없이 드러냈는데, 특히 자신의 이름 약자인 D-S-C-H를 음표로 바꿔 3악장과 4악장에서 비중 있게 사용하는 전례 없는 표현력을 선보였습니다.

6일 최희준과 수원시립교향악단은 쇼스타코비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교향곡 5번을, 13일 홍석원과 광주시립교향악단은 역시 좀처럼 연주가 드문 11번 교향곡 <1905년>을 무대에 올립니다.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는 1905년 1월 9일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앞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인간의 폭력성을 음울하고 비통하게 그려낸 후기 명작입니다.

이렇게 교향악축제 기간 모두 4곡의 쇼스타코비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의 교향곡은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대편성에 심오한 주제의식까지 담고 있기 때문에, 지휘자의 해석과 리더십, 단원들의 연주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레퍼토리로 꼽힙니다.

특히 서울의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드문 지방 오케스트라 입장에서는 충분히 욕심을 낼 만한 작품들입니다.


■ "쇼스타코비치 음악, 우크라이나 사태 고려하면 시의적절한 선택"

그런데 올해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 유독 많은 이유를 우크라이나 사태로부터 찾은 독특한 해석도 있습니다. 현 스위스오케스트라총연합회 이사장이자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사인 토니 크라인은 KBS에 "예전에는 교향악축제가 주로 구스타프 말러의 대편성 교향곡을 연주하는 기회였던 데 반해, 올해는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 4곡이나 포함됐다"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고려하면 매우 시의적절한 선택"이라 평가했습니다.

크라인은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의 독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오랜 세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며 "그는 오직 음악을 통해 그의 감정과 확신, 두려움과 고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동시대인들의 심경을 가장 잘 표현한 음악이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이라는 겁니다.

구스타프 말러
■ 올해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은 교향곡 1번 <거인> 한 곡뿐

크라인의 지적대로 원래 교향악축제의 단골 레퍼토리는 말러의 교향곡이었습니다. 지난해에도 교향곡 4번과 6번이 프로그램에 등장해 음악팬들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올해는 15일 김홍식이 지휘하는 제주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한 곡뿐입니다.

말러의 9곡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지만,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교향악축제에서 9회나 연주됐을 만큼 '식상한' 곡이기도 합니다.

같은 기간 8번 연주된 말러의 교향곡 5번도 올해는 만날 수 없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실력은 말러를 연주할 때 드러난다는 불문율이 적어도 올해 교향악축제에서는 깨진 셈입니다.

<4분 33초>의 악보
■ '침묵의 소리' 존 케이지 <4분 33초>도 선보여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공연들도 있습니다.

8일 최수열이 이끄는 부산시립교향악단은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선보입니다.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이 파격적인 작품은 연주자와 청중의 침묵 속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소음이 바로 음악이라 주장하며 음악의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진, 20세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힙니다.

서로 어려운 곡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려는 사이, 부산시향은 거꾸로 '연주가 없는' 작품을 고른 겁니다.

앞서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과 음악감독 키릴 페트렌코가 팬데믹 여파로 독일 내 공연장이 모두 폐쇄되기 직전인 2020년 10월 31일, 이 침묵의 작품을 통해 '음악의 공백'을 풍자한 바 있습니다.

아론 코플랜드
■바그너부터 코플랜드까지, 평소 접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작품들 연주

20일 백진현이 이끄는 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은 거쉬인과 코플랜드, 번스타인 등 미국 작곡가들의 음악만으로 프로그램을 채웠습니다.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독일과 러시아 작곡가들 일색인 여타 공연과 비교하면 과감한 선택이 돋보입니다.

특히 이날 연주되는 아론 코플랜드의 교향곡 3번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행복에 도취했던 미국의 분위기를 다채로운 선율 속에 담아낸 명곡으로,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 금관악기와 타악기가 전면에 등장하는 '보통사람들을 위한 팡파르' 주제가 매력적입니다. 앞서 17일 정주영 지휘의 원주시립교향악단도 김상윤 협연으로 코플랜드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선보입니다.

21일 김건이 지휘하는 창원시립교향악단은 '사랑'을 프로그램의 주제로 정하고,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사랑의 죽음'과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 등장하는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를 음악으로 표현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시를 연주하기로 했습니다.

22일 정헌이 지휘하는 목포시립교향악단이 선택한 쇤베르크 편곡의 브람스 피아노 4중주 1번은 브람스 특유의 절제된 열정을 한층 더 깊고 화려하게 표현해 '편곡 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현장 연주로 들어야 제맛인 대작들에 대한 갈증 풀어줄 것"

부천 필하모닉 제1 바이올린 부수석을 역임하고 현재 음악 평론가로 활동 중인 최은규 씨는 올해 교향악축제 프로그램에 대해 "대작 위주의 참신한 레퍼토리가 돋보인다"며 "현장 연주로 들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대작들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음악축제가 될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과거에는 해외 일급 오케스트라들보다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는 부당할 정도로 인색한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 교향악축제에 참여하는 오케스트라들은 대체로 기량이 아시아 정상급 수준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여파로 객석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도 꾸준히 공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났던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다시 활력을 찾고 희망을 모색하고 있는 시기, 교향악축제가 모두의 출발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