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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희생자인 한백흥 지사의 손자 한하용 씨가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을 찾아 조부의 위패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주4·3사건이 발생한 지 74년 만에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 보상금이 지급되고 있습니다.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이 보상금은 액수를 떠나 국가의 개별적인 사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데요. 이 보상금을 선뜻 기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 "할아버지 마음도 같을 것 …평화·인권 위해 써달라"

오늘(18일) 오전 한하용 씨(77)는 흰 봉투를 품 안에 안고 제주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을 찾았습니다. 4·3 당시 희생된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섭니다.

한 씨의 할아버지는 3·1 만세 운동이 일어난 1919년 제주에서 조천 만세운동을 주도한 고 한백흥 지사입니다. 초대 함덕리장으로 있던 한 지사는 1948년 11월 군경 토벌대에 의해 청년들이 집단 학살되는 것을 만류하다 무장대로 몰려 희생됐습니다.

제주 4·3 희생자인 한백흥 지사의 손자 한하용 씨가 18일 오전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을 찾아 할아버지의 위패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 씨의 앞에는 꽃바구니와 국가보상금이 담긴 봉투가 올려져있습니다.
독립유공자이자 4·3 희생자인 한백흥 지사의 손자인 한하용 씨. 한 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74년 만에야 지급된 국가 보상금을 위패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한 씨는 "할아버지 몫으로 저에게 보상금이 나왔다"고 고하며 "할아버지가 흘린 피가 헛되지 않도록 좋은 데 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 씨는 할아버지 앞으로 나온 보상금 9천만 원 가운데 자신의 몫 3백여만 원을 평화를 위한 교육에 써달라며 제주4·3유족회에 전액 기부했습니다.

한 씨는 "70여 년 동안 고통 속에 살아오면서 평화와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됐다"며 "4·3 당시 지역 청년들을 살리려다 함께 희생된 할아버지의 뜻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경찰 의인 뜻, 후대에 알리는데 써달라"

2020년 12월 24일 KBS 7시 뉴스에 보도된 4·3 후유장애 희생자 강순주 씨와 문형순 전 성산포경찰서장의 사진. 강 씨는 자신을 비롯한 200여 명의 목숨을 구해준 문형순 전 서장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4·3 당시 경찰 고문으로 후유 장애를 갖게 된 강순주 씨(91)도 기부에 동참했습니다.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거부해 강 씨를 비롯한 200여 명의 목숨을 구한 고 문형순 경찰서장의 뜻을 후대에도 알리기 위해섭니다.

강 씨는 2018년 제주경찰청 문형순 서장 흉상 제막식에 참석해 "당신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아니었다면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께서도 편하게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라며 "저희 직계가족 22명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한 바 있습니다.

이날 강 씨는 자신을 비롯한 죄 없는 사람들을 훈방하면서 문 전 서장이 '너희들은 행운아다.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 말을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강 씨는 보상금 4,500만 원 가운데 1,000만 원을 의인 선양을 위해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강 씨 대신해 4·3유족회에 기부금을 전달한 아들 강경돈 씨는 "군부로부터 양민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는데도 '부당하므로 불이행'한다는 용단 덕분에 아버지가 사셨다"며 "이런 의로운 일들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 형사보상금 기부도…"가칭 평화인권재단 설립 계획"

18일 오전 제주4·3유족회 사무실에서 보상금 기부자들과 4·3관계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이보다 앞서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수형인 희생자 유족 3명이 형사보상소송을 통해 받은 보상금 중 100만 원씩을 기부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한 한 기부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4·3유족회 덕분"이라며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유족회 활동에 도움이 되고 싶어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유족회는 이들 외에도 기부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며 이르면 내년 1월 가칭 '평화인권재단'을 설립해 기금으로 쓸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자발적인 기부가 이어지면서 제주 4·3이 과거사 해결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