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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난지 오늘로 17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피해 규모와 자원봉사자들의 소식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사고 책임 규명이나 보상 문제에 대한 논의는 더디기만 합니다. 이런 가운데 줄어드는 기름띠와 달리 어민들의 가슴은 점점 더 검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리포트> 유조선이 뱉어낸 만 2천 여 킬로리터의 원유. 푸르디 푸른 바다 위에는 마수처럼 번진 검은 띠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드나듦이 심한 서해안의 해안선 굽이굽이, 검은 재앙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거대한 반달 모양의 백사장은 한순간에 그 아름다움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자원봉사자와 주민 등 33만 여 명의 힘으로 백사장은 사고 발생 열흘 만에 검은 파도를 물리쳤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검은 띠는 이제 많이 옅어졌습니다. 방제복에 마스크를 한 자원봉사자 수백여 명이 한꺼번에 도로로 쏟아져 나옵니다. 오전 방제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입니다. 점심은 자원봉사자를 돕는 또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한 밥과 국으로 해결합니다. 해수욕장 주차장의 시멘트 바닥, 앉은 자리가 그대로 식사 장소입니다. <인터뷰> 민영기(자원봉사자) : "(왜 이렇게 급하게 드세요?) 얼른 가서 작업해야죠. (식사하고 바로 나가셔야 되요?) 네. (식사시간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요?) 정해진게 아니고요. 먹고 바로 가서 작업을 해야하니까요. 빨리 해야 조금이라도 더 하죠." 누구 하나 시키는 사람이 없는데도 20여 분 남짓 식사를 마치고 자원봉사자들은 서둘러 백사장으로 돌아갑니다. 이 날은 초속 14미터 안팎의 바람이 종일 불어 바람을 피할 곳이 전혀 없는 백사장에 제대로 서 있기 조차 힘든 날씨였습니다. 조심하라는 안내방송만 있을 뿐 기름을 떠내고 다 쓴 방제도구를 치우는 것 까지 자원봉사자들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 <인터뷰> 민경준(자원봉사자) : "지시사항 하나도 없어요. 지시사항 같은 것 없고 그냥 알아서..." <인터뷰> 신동욱(자원봉사자) : "뉴스로 봤을때는 금방금방 빨아들이는 것 같은데 지금 오니까 기름이 더 심하게 뭉쳐있어서 수거하기도 더 힘들도..." 부지런히 작업해도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안의 특성상, 물이 들어차는 시간엔 작업 인력이 모두 철수해야 합니다. 이렇게 열흘을 견뎌 만리포에 드리운 검은 띠는 옅어진 것입니다. 이번 기름 유출 사고로 큰 피해를 본 태안군 4개 면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잡은 근흥면. 근흥면 신진항에서 하루 두 편 운항하는 여객선을 타고 30분을 채 못 가면 84명의 주민이 사는 가의도에 도착합니다. 가의도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육십 평생을 이 곳에서 살아온 고구옥, 김명옥 씨는 보이는 기름이 다가 아니라며 잠시 잠잠해진 바다로 나섰습니다. <인터뷰> 고구옥(가의도 주민) : "잠 자려고 잠을 청해보면 바다에 다니면서 기름 본 것 밖에 생각이 안 나..." 섬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한 지 채 5분이 되지 않아 꺼멓게 변한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기잡이에 나설 수 없게 된 육지 마을의 작은 어선들이 가의도로 몰려왔습니다. 이 어선의 주인들은 기름 제거 작업을 해서라도 생계를 이어보려고 가의도의 꺼먼 바위를 껴안고 앉아 있습니다. <녹취> "(어떻게 오셨어요? 여기 왜 오신거에요?) 기름, 가름 작업하러요. (원래 여기 주민이세요?) 아니, 저 쪽에 살아요." 하지만 조금 더 배를 몰면 마을 반대편, 미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에서 섬은 이미 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이 곳은 가의도 동쪽입니다. 주민들이 자연산 굴과 홍합 등을 따던 이 곳은 사고 발생 열흘이 지난 지금도 기름이 흥건합니다. 검은 용암처럼 흘러내린 기름은 바위 구석마다 들어차 5~10센티미터가 넘게 쌓여있습니다. 섬 둘레를 집어삼킨 원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굳어가고 있습니다. 바다에는 기름 덩어리가 그대로 떠 다닙니다. <인터뷰> 고구옥 : "이게 이게 이렇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 이것 좀 보세요. 퍼도 퍼도 표도 안 나고. 어떻게 해. 가슴이 진짜 가죽이 질겨서 안 터져. 가죽이 질겨서 안 터지지. 이걸 보고 안 터지겠냐고..." 외지인들의 눈엔 원유를 뒤짚어 쓴 바위지만 틈마다 자연산 굴과 홍합이 넘쳐나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터전입니다. <인터뷰> 김명옥(가의도 주민) : "떼어 먹을 수가 없어요. 이게 다 이런데서 용돈쓰고 전화비 내고 했는데 이제 다 틀리고, 홍합을 채취할 수가 있나 굴을 채취할 수가 있나 뭐든지 바위에서 나는 건 손댈 수가 없어요. 다 끝난것 같아요." 국방과학연구소 직원들 70여 명 만이 보유한 선박을 타고 힘들게 이곳까지 찾아왔습니다. 가의도 주민들은 예순에서 아흔 살 사이의 노인들입니다. 마을 입구, 눈 앞에 보이는 기름과의 싸움도 버겁습니다. 바다 낚시로 소문난 섬이라 사계절 내내 손님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도리어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해 주는 지경입니다. 사정을 알고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는 대부분 태안군 주민 수십 명 뿐 이고 사고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거둔 기름과 방제 작업 폐기물은 아직도 섬 밖으로 내가지 못했습니다. 홍합을 따 1kg에 5천원 씩 받고 팔았다는 82살 최기순 할머니는 홍합을 따던 도구로 이제 기름 덩어리를 파고 있습니다. <인터뷰> 최기순(가의도 주민) : "이사를 가려면 돈이 있어야지 그냥 간데? 내 고향에서도 먹고 못 사는데 이사 가면 어떻게 살라고..." 가의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날 수도, 고향에서 전처럼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녹취> "우리는 어떻게 사느냐고 어떻게 누가 우리 주민을 살릴 거냐고. 이렇게 우리를 못 살게 해 놓고 사람들은 와 보지도 않고 가의도 주민 살려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라 파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마을, 파도리. 가의도 보다는 손길이 많이 미치지만 자갈과 바위는 닦아도 닦아도 기름이 깨끗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인터뷰> 유순섭(파도리 주민) : "어제 종일 수십명이 닦았는데 도로 물 들어오면 이렇게 돼서 그냥 파는대로 나오고 그래요." 당일 작업을 하고 떠나는 자원봉사자들도 힘든데 일주일 넘게 찬바람을 맞으며 기름밭에 얼굴을 묻고 있는 60,70대 노인들의 건강이 버틸 리 없습니다. <인터뷰> 정남례(파도리 주민) : "진통제를 먹어. 여기 오면 주거든요. 아침에 하나 먹고 점심에 하나씩 먹고..." <인터뷰> 정종목(파도리 주민) : "골 아픈 분들 약을 내가 드립니다. (넣고 다니시면서 한 알씩 드세요?) 그렇죠. 그렇죠. 머리 아프고 속도 미슥미슥하고 구토증이 나오려 그러니까..." 작업 현장 근처 민박집 서너채만 지나면 나오는 파도초등학교의 운동장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임시 주차장이 돼 버렸습니다. 그네를 타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귀에 마스크를 걸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솔(파도초등학교 1학년) : "(마스크 왜 했니?) 마스크요? 기름 냄새 때문에요." <인터뷰> 김은주(파도초등학교 1학년) : "(처음에 기름냄새 많이 났어요?) 네. (얼마나 많이 났어요?) 하늘만큼 땅만큼..." 유치원생까지 다 해도 모두 52명인 파도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요즘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 박솔(파도초등학교 1학년) : "학교요? 5시까지요. (1학년인데 왜 이렇게 늦게까지 있어요?) 왜냐하면요. 엄마 아빠가 다 기름 거두러 가기 때문에 우리가 일찍가면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해서 늦게 가요." 파도리에서는 밤이 되도 기름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며칠 전 대책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기름 제거 작업은 어느 정도 틀이 잡힌 만큼 앞으로의 보상 문제가 중요한 안건입니다. <인터뷰> 김필문(파도리 어촌계장) : "강도가 높을 때 조사가 시작되야 하는데 이게 서서히 말이죠. 시간을 끌어서. 눈으로 보일 때는 가시적인 피해가 엄청나게 있었는데 한참 지나고 나면 없잖아요. 눈으로 보이는 피해가. 그러면 보험사에서는 엉뚱한 얘기를 하니까..." 보상에 필요한 증거를 남기려고 기름이 흘러든 양식장에서 딴 전복과 바지락을 삶아 그 상태를 기록합니다. <인터뷰> 마을 주민 : "예전의 전복은 고소한 어떤 향이 나거든요. 전복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지금은 아예 퀴퀴한 냄새가..." <인터뷰> 마을 주민 : "아유 뭐...완전히 상한 냄새가 나네. 우리들이 먹던 냄새가 아니에요." 어떻게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건지, 주민들의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돼 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는데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엄청난 책임을 떠안게 된 것, 마을 주민들이 더욱 기가 찬 이유입니다. <인터뷰> 정종오(파도리 주민) : "삼성중공업 예인선, 유조선 두 사람 잘못해서 얼마가 이게 절단나는 거에요. 이건 살길이 없어요. 정부에서 어업허가가 있거나 없거나 고류 하여간 여기서 피해보는 어민들한테는 그 대책마련을 정부차원에서 꼼꼼히 해 주셔야 합니다." 충청남도는 이번 사고로 태안 안면도에서 서산 가로림만에 이르는 167㎞의 해안선 473곳에서 5천 여 헥타르의 어장과 양식장 피해가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곳을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과 각종 생물은 오랜 시간 예전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옅어지는 기름띠와 달리 어민들의 가슴 속은 점점 더 검게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들에게 더욱 두려운 건 사람들의 관심이,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빠져나가도 태안을 기억에서 잊지 말고 다시 바다와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성원해 달라고 피해 지역 주민들은 입을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