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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터에서 화장실을 쉽게, 제때 못 간다면 얼마나 곤란할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곤란함을 넘어 방광염 등 만성 직업병으로 고통받기도 하는데요.

화장실 문제여서 꺼내놓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KBS 연중 기획 '안전한 일터, 건강한 노동을 위해', 오늘은 '화장실'과 '산업재해', 두 단어의 다소 낯선 연관성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김지숙, 김준범 두 기자가 차례로 보도합니다.

[리포트]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일터에서 화장실 가기 어려운 분 계신가요?

아마 대부분 아닐 겁니다.

그런데 가끔이 아니라 매일, 화장실 문제로 거의 전쟁을 치르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하루에 15가구 정도 가고요."]

23년 차 학습지 교사 유득규 씨.

하루 종일 말을 하지만 물 마시는 건 금물입니다.

학생 집에서 준비한 음료수도 마시지 않습니다.

화장실 때문입니다.

[유득규/학습지 교사 : "(왜 그대로 가지고 나오셨어요?) 지금 마시면 다음 수업 때 화장실 문제도 있고 해서..."]

방문 가정에 화장실이 있지만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면 참는다고 합니다.

화장실을 쓰면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득규 : "(화장실을) 보이는 걸 좀 꺼려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어머니들도 꺼려하시는 부분이 (있어서)..."]

유득규 씨의 하루 일과를 보면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면서 화장실엔 거의 못 갑니다.

화장실을 참으면서 앓기 시작한 방광염은 만성이 됐고, 두 달에 한 번은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유득규 : "병원에서는 '왜 참냐, 소변을 봐라'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그건 의사 선생님 말씀이고, 우리의 생활 패턴은 그게 안 되니까..."]

이 때문에 업무 구역이 정해지면 유 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공중화장실 위치 파악이 됐습니다.

학교 급식실 조리사 김 모 씨도 화장실이 문제입니다.

불과 20미터 거리에 화장실이 있지만 오전 내내 한 번도 가기 힘듭니다.

조리사 7명이 4시간 동안 950인 분의 점심을 만들다 보면 잠시의 여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복장이 큰 걸림돌입니다.

[김○○/학교 급식실 조리사 : "(화장실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 잠깐 다녀오는 게 힘든 일인가요?) 여러 가지를 많이 입고 있다 보니까 그게 번거로운 거죠. 면장갑 끼고, 팔 토시 끼고, 고무장갑 끼고, 앞치마 하고, 장화 신어요."]

심지어 출근 전날은 저녁 식사량을 줄이기도 합니다.

[김○○ : "혈뇨가 심하게 나와 가지고 방광염 염증이 심하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김○○ : "(몇 분 정도가 이런 비슷한 증상이 있다고 들어보셨어요?) 방광염 경험들이 다 여러 번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일터에서 얻은 직업병이지만 두 사람 모두 산재 신청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방광염이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도 단 한 건 뿐입니다.

이런 어려움, 두 사람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 특성상 카메라에 담기는 어려워 당사자들이 이렇게 직접 그린 일터의 화장실을 살펴보겠습니다.

김준범 기자입니다.

[리포트]

방금 김지숙 기자가 들고 있던 그림 들여다볼까요?

한 학교 급식실의 조리사가 그린 화장실 지도입니다.

변기와 세탁기가 한방에 있죠.

세탁실 겸 화장실입니다.

하지만 변기 앞엔 가림막도 없어 참 난감하다는 메모가 눈에 들어옵니다.

'대변 금지'는 무슨 의미일까요.

업무 중엔 대변을 참으라는 지시라고 합니다.

이건 여성 기관사가 그린 그림입니다.

기차에는 화장실이 많지 않나?

많기는 합니다.

그런데 기관차와 발전차에는 화장실이 없고, 객차로는 건너가지 못하게 막혀 있습니다.

그러면 화장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역에 정차하는 1분에서 4분 사이에 전력 질주, 화장실, 볼일, 또 전력 질주, 뛰고 또 뛴다는 겁니다.

어느 역에서 화장실을 가야 하나 항상 생각한다, 강박증까지 생긴다는 고백도 있습니다.

일터, 화장실, 그리고 직업병.

낯선 주제지만 이제는 차분히 생각해 볼 때입니다.

[정민주/관람객 :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하지만 모두가 겪고 있다는 점에서 다 같이 생각해 봐야 되는 문제가 아닌가 싶었어요."]

KBS 뉴스 김준범입니다.

촬영기자:강희준 김상민 조은경/영상편집:안영아/그래픽:이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