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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이웃주민(음성변조) : "어쨌든 살인은 살인이죠. 관심을 조금만, 관심을 줬으면 괜찮았을텐데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크니까."

<인터뷰> 이명숙(한국여성변호사회장) : "가정이라는 게 현관문만 닫으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어요. 아무도 감시하지 않고 관리감독하지 않고 그 다음 아주 은밀하게 이뤄지는 그들만의 세상이거든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안식처입니다.

그런데, 모든 부모가 내 아이에게 편안한 품이 되어주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모든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결코 전하고 싶지 않은 일. 그러나 엄연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실.

저는 지금 안타깝게 사라져 간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서울의 한 주택가.

경찰차가 여러대 오갑니다.

작은 골목 입구엔 병원 장례식차가 서있습니다.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무언가가 들 것에 실려 나옵니다.

숨진 어린아이입니다.

좁은 골목 안쪽 길, 다닥다닥 쪽방들이 붙어있는 낡은 건물 제일 안쪽.

29개월짜리 어린 사내아이는 이 작은 집에서 숨졌습니다.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엔 반드시 경미한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 처럼, 어쩌면 사고는 예견돼 있었을 지 모릅니다.

지난 2013년 2월, 생후 6일 밖에 안 된 아기가 지저분하고 추운 방에서 지낸다고 이웃 주민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습니다.

현장에 출동해서 조사했던 국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는 아기가 유난히 말랐고, 엄마는 신생아 옆에서 연신 담배를 피웠다고 당시의 상황을 말합니다.

<인터뷰> 이태호(당시 상담사) : "젖병 같은 것들이 많이 널브러져 있었고, 분유도 이게 도대체 언제 씻은 건지 저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 아동이 어느정도 무게가 있어야 되는데 너무 가벼웠었고, 또 등뼈나 옆에 갈비뼈들이 너무 심하게 드러났던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었지만 상담사가 아이를 강제로 데리고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인터뷰> 이태호(당시 상담사) : "이 집에서 살면 안되겠다 라는 판단을 하고, 그 아동에 대해서 일시보호 조치를 진행하려고 했었으나 그 아동 모(어머니)가 절대 내 아이는 데리고 갈 수가 없다라고 이야기를 했었고."

1년 반 뒤, 또 다시 학대 신고가 같은 기관에 접수됐습니다.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고, 아이를 집어던지려 한다는 것이 신고 내용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이웃 주민이 세번째로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습니다.

이번엔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가 가해자란 신고였습니다.

부부는 자주 싸웠고, 아버지는 일주일에 2~3차례 2돌도 안 된 아이를 때린 것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 결과 나타났습니다.

<녹취> 이웃주민(음성변조) : "그냥 한없이 울어 애가. 그냥 뭐 죽을듯이 그냥 막 울어 애가."

아이는 보호시설에 격리됐습니다.

법원은 아버지의 학대 혐의를 인정하고 80시간의 상담 교육을 받으라는 처분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청와대의 민원 이첩을 받은 국가권익위원회는 부모가 과연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 확인하라고 요청합니다.

조사 기관인 은평구청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정신건강증진센터의 검토 의견을 토대로 서울시는 아이의 가정 복귀를 승인했습니다.

부모에게는 아이를 학대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았습니다.

엄마의 우울증 등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약물 등으로 관리할 수 있고, 가혹한 학대가 아닌 이상, 아이를 보호하던 시설이 친권자의 양육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겁니다.

집으로 간 아이는 어떻게 지냈을까?

<녹취> 이웃주민(음성변조) : "돌보지를 않으니까 혼자서 거의 왔다갔다 해요. 왔다가 다시 울면서 들어가고. 옷을 안 입히니까 한겨울에도 진짜로 반팔이예요. 반팔에 아래(하의)는 아예 안 입고. 항상 맨발로 다녀요."

<녹취> 이웃주민(음성변조) : "코 벌렁벌렁하고 (콧물이 흘러도) 닦지도 않아. 불쌍하니까 여기 자잘한 거(먹을 거) 하나 주려고. 못 먹는 것은 그것이 당연한 거지. 없이 사니까."

태어나서 춥고, 자라면서 외롭고.

아이는 그렇게 29개월을 살았다고 이웃 주민들은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일, 아이는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질식사였습니다.

구조대원이 현장에 출동했을때 아이 입은 스타킹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엄마는 경찰 조사에서 아이가 시끄럽게 울자, 조용히 시키려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인터뷰> 현장 구조대원 : "그 전날 저녁때쯤에 스타킹으로 입을 묶었다고 하더라고요. 언제 풀었느냐 하니까 말씀을 얼버무리더라고요. 아침에 풀었다, 새벽에 풀었다, 묶고 나서 얼마 안 있다 풀었다 계속 말이 바뀌더라고요."

엄마는 살인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아동학대 신고는 해마다 늘어, 지난해 처음 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 결과 학대의 83%는 집안에서 벌어졌고, 학대를 가한 사람은 친아버지 45%, 친어머니 32% 등 부모가 81%였습니다.

학대는 우발적이기 보다 반복적인 경향이 강했습니다.

38.7%가 거의 매일 학대를 가했고, 2~3일, 혹은 일주일에 한 번 학대가 일어난 경우도 각각 15%, 11% 였습니다.

<인터뷰> 박형원(서울사이버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 "이제는 개인의 문제로서만 해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왜 그런가 하면 부모들의 아동학대 원인이 이미 빈곤이라든지 알콜 문제라든지, 또는 뭐 실업이라든지 건강, 장애문제 여러가지가 굉장히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방법은 다양했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8살 남자아이는 배가 고파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몇 만 원을 훔치다 발등을 흉기로 찍혔고, 부모가 돌봐주지 않은 11살 여자아이는 추운 겨울, 일주일동안 집밖에서 지내다 동상이 걸려, 두 발을 잘라야 했습니다.

4살 난 여자아이는 오랫동안 얻어맞아 갈비뼈 8곳이 부러지며 신장. 췌장이 파열됐고, 먹을 것을 주지 않아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야 병원으로 옮겨진 아이도 있었습니다.

가해자는 모두 부모였습니다.

<인터뷰> 배기수(아주대학교병원 소아과 전문의) : "아동학대의 경우에는 일회적인 손상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서 여러번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요. 온 몸에 상처가 존재해 있고요. 그 다음에 넘어져서 엄마가 안고 목욕탕에 들어가다가 넘어져서 머리가 깨졌다고 그러는데, 보면 머리 깨진 것 외에도 머리 뒤에도 상처가 있고 갈비뼈에도 상처가 있고 등에도 상처가 있고."

지난 2013년 한 해에만 19명의 아동이 부모의 학대로 숨졌습니다.

소풍가고 싶다는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이른바 '울산 아동 사망사건'.

아이의 생모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고, 여론은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인터뷰> 주민 : "너무 마음이 아프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몇 년 동안 얼마나 고생했었을까. 밤에 무서웠을까 그 생각을 하니까."

학대 사망사건에 주로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하던 검찰은 이례적으로 계모 박 모씨에게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1심 법원의 판결은 징역 15년.

피의자 박 씨에게 아이를 살해하려는 고의가 있었음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인터뷰> 이명숙(한국여성변호사협회장) : "부모만큼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라고 전제를 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혹한 학대행위를 하고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나도, 아무리 큰 상처를 입어도 형량은 매우 낮아지죠. 인천 어린이집 뺨 한 대 거칠게 때린 것만으로 지금 2년 선고받았는데, 자기 자녀를 밟아서 사망에 이르렀지만 15년밖에 선고가 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반하는 거죠."

울산 사망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특례법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를 범죄로 인식하고 관련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아이가 사망했을 때, 가해자를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고, 신고의무자의 학대 신고를 의무화했으며, 피해아동 보호를 위해 필요할 경우 친권을 제한하는 근거를 만들었습니다.

특별법 시행 1년이 채 안 된 지금.

현장에서의 혼란은 별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인터뷰> 장화정(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 : "합법적인 기준을 서로 국민들과 아동보호전문기관 그리고 경찰이 갖고 있지 않기 떄문에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경찰은 이게 학대라고 보여지는데, 어머님이나 아버님 입장에서는 이건 훈육정도다 라고 얘기하시는 경우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특별법 시행 이후 아동학대 신고는 전년보다 50%이상 급증했는데, 이를 상담하고 조사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신속한 아동학대 대응을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50여 곳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두 배 이상 늘려야 하지만, 예산이 없어 추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남인순(국회 보건복지위원) : "상담원들의 처우나, 근로시간도 너무 길기 때문에 이런부분을 좀 시정해줘야 되고, 그리고 아동보호 전문기관 자체에 변호사라든가 이런 분들이 있어서 바로 가서 임시적인 법적 조치를 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이런 변호사들이 그런 일을 한다든지, 국가가 예산을 써야 되는데 국가가 예산을 지금 하나도 안 쓰고 있다는 거죠."

학대 가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와 개입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인터뷰> 박형원(서울사이버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 "미국같은 경우에는 '가족 지원과 보존에 대한 법률'이 있어서 처벌과 가족에 대한 지원이 같이 가는 그런 모양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로소 작년에서야 처벌에 대한 것이 조금 생겨난 것이고 앞으로 갈 방향은 이런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들."

사람들은 늘 끔찍한 아동학대가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그러나 잊을만하면 반복됩니다.

드러나지 않은 채 묻혀진 피해자도 많습니다.

사회적 감시망을 강화하고 즉각적인 보호조치가 뒤따라야만 가정이라는 장막 속에서 숨죽이며 고통받는 학대 아동을 구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