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평화봉사단원 부부 방한 _카지노에서 튀김_krvip

美 평화봉사단원 부부 방한 _경기장 스포츠 베팅_krvip

"심장수술 주선보다 더 어려운 일은 숙희 여권 문제였어요. 여행 허가가 안 나와 발을 동동 굴렀는데 이범석(전 외무부장관) 씨의 도움으로 미국행이 가능했지요." 1969년 예천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하던 중 심장병으로 생명이 꺼져가던 한 소녀를 뉴욕 벨뷔병원으로 데려가 수술로 소생시킨 평화봉사단원(Peace Corps) 부부(베리/제롬 라이크 씨)가 지난주 방한했다. 미국 코넬대 의과대학 교수(내과)인 베리(여.62) 씨는 동갑내기 남편 제롬(뉴욕 하부라 학교 교사) 씨와 27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하숙집 주인 딸이던 이숙희(당시 8세) 양의 수술 과정과 이후 "접착제처럼 끈끈해진 두 가정"의 인연, 봉사활동의 추억 등을 밝혔다. 김해시 삼계동에서 음악학원을 운영 중인 이숙희(48) 씨는 남편 이 모씨와 사이에 고교와 대학에 다니는 자녀 두 명을 두고 있다. 외교통상부와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25일 방한한 평화봉사단원과 그 가족 등 96명의 일원으로 방한한 두 사람은 이날 오후 예천과 김해 등지를 방문, 수 일간 체류하며 과거 재직했던 학교를 찾아가 동료 교사와 제자 등을 만날 계획이다. 뉴욕 출신으로 지난 98년 3자녀를 데리고 방한, 30년 만에 이 씨 가족과 "눈물의 재회"를 했다는 두 사람은 이번 여행에서도 "좀 더 오래 만나고 싶어" 평화봉사단 대표단보다 일주일 앞서 한국으로 와 이 씨 가족과 상봉했다고 말했다. 이숙희 씨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라이카 씨 부부에 대해 "두 분은 한 가족입니다. 이 말 외에 달리 할 말이 있겠습니까?"라며 소중한 인연을 강조한 뒤 "부모님도 40년 간 자식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으로 여기고 늘 연락을 주고 받고 계시다"고 말했다. 영문학도였던 베리 씨는 "숙희에게 새 생명을 준 소아 심장과 의료진의 헌신하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뉴욕 주립대 의과대학원에 진학, 내과(노인병학) 교수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주 빙햄튼 대학에서 드라마를 전공한 제롬 씨와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한 뒤 방한, 예천의 하숙집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다. 다음은 라이크 씨 부부와의 문답이다. -- 수술 주선이 쉽지 않았을텐데. ▲ (아내)외무부와 보사부 모두 숙희의 여권 발급을 거부해 제일 애를 먹었어요.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에서도 심장수술을 하는데 왜 하필 미국이냐?"며 불가 입장을 고수했어요. (남편)당시 한국 의료진이 시행한 심장수술은 4건에 불과한 데다 환자 4명 모두 후유증 등으로 숨졌더군요. 뉴욕에서는 매주 심장수술만 5∼6차례 실시해 대부분 잘 회복했다는 점 등을 들어 애원했는데도 막무가내였어요. 다행히 외무부 간부 이범석 씨의 도움으로 여권이 나왔어요. -- 수술 비용 마련은. ▲ 우리 모두 직업이 없어서 수술비를 엄두도 내지 못해 각계에 온정을 호소했더니 병원에서 공짜 수술을 해줬어요. 한국인 심장병 환자의 수술을 맡아본 적 있는 벨뷔 의대의 폴 크레인 박사(선교사) 소개로 프랭크 스펜서 박사를 찾아갔지요. 숙희의 항공료는 친정 어머니가 500달러 전액을 부담해줬고요. -- 어린 소녀를 이역만리 외국의 병원으로 데려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 (아내)숙희는 우리 방에 자주 놀러와 친하게 지내 문제가 없었어요. 부모님이야 많이 걱정하시면서도 다른 방도가 없으셨지요. 우리 부부도 무진장 걱정했지요. 미국에 데려갈 때부터 수술과 회복 과정까지 혹시 잘못될까봐 줄곧 마음을 졸였어요.(남편) 저는 무섭기까지 했어요. -- 한 생명을 구했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도 갖고 있겠군요. ▲ (아내)모든 분들께 감사한 일이죠. 우리가 숙희 가족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는 것은 받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런 나눔의 과정을 통해 저희도 많이 배우고 느낀 게 많아요. 탈무드에 나오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전 세계를 구원하는 것'(If you save one person, you save the world)이라는 가르침이 숙희를 알게되면서 비로소 이해가 된 것 같아요. -- 한국 생활 중 잊혀지지 않는 추억은? ▲ (남편)초가집살이나 펌프, 또 집 뒤에 있어 겨울이면 들락거리느라 고생이 많았던 '뒷간'(변소) 등을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와요. (아내) 또, 샤워시설이 없어 매주 공동 목욕탕에 다니던 추억 등이 많은 데 이 모든 한국적인 풍경들이 지금은 모두 박물관에야 가야 만날 수 있어 아쉽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