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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개봉된 영화 “뉴욕의 가을”은 전 세계인들에게 뉴욕에 대한 또 다른 환상을 심어줬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물들인 그 아름다운 단풍들이라니.... 과연 가을은 뉴욕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한국보다 계절이 한 달쯤 늦는 뉴욕은 9월이 돼서야 늦더위가 가시고, 10월이 돼서야 가을이 시작된다. 단풍은 10월 중순을 지나 절정을 이룬다. 물론 봄빛도 아름답지만, 센트럴파크가 꽃보다는 주로 나무로 이뤄진 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센트럴파크가 다채로운 색깔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계절은 단연 가을이다.

뉴욕에 왔던 첫해 가을, 나는 “아, 내가 이 센트럴파크를 걷는구나!” 가슴이 벅차, 간혹 날이 맑은 날이면 일을 일찍 마친 늦은 오후, 사무실 근처에 있는 센트럴파크 남쪽을 산책했다.

해 질 무렵, 영화 “뉴욕의 가을”에 나왔던 센트럴파크 서남쪽의 작은 연못은 표면에 공원의 단풍잎과 주변의 유럽풍 빌딩, 현대식 빌딩들을 반사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산책하다 그 연못가의 벤치에 앉아, 연못 표면에서 색깔이 변해가는 석양을 즐기는 참이다. 갑자기 발밑으로 뭔가 지나가는 듯하다. 내려다보니 커다란 쥐들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소리를 억 지르며 벌떡 일어나 뛰쳐나왔다.

낮엔 땅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쥐들이 어둑어둑해지자 물가로 기어 나와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 뒤론 다시는 석양 무렵엔 그곳에 가지 않는다.

맨해튼에서 쥐에 대한 공포는 밤이 되면 늘 찾아온다. 자동차가 수시로 불빛을 반사하는 대로변이 아니라면 비교적 좁은 도로, 이면도로, 주택가, 강가... 어디서든 쥐를 만날 수 있다. 2014년 뉴욕시 어퍼이스트사이드 식당의 절반 이상이 쥐 관련 문제를 겪고 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하철은 또 어떤가? 최근 뉴욕 지하철에서 죽은 쥐를 끌고 가는 쥐, 피자를 나르는 쥐들의 동영상이 한국에까지 전해졌다. 그야말로 흔한 일상이다. 지하철에서 자고 있는 사람 위로 쥐가 지나가는 동영상이 나올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뉴욕의 지하철역에선 절대로 선로 쪽을 보지 않는다. 무심코 선로 쪽을 바라보고 있다간 시커먼 선로 사이사이를 활보하는 쥐를 보게 되기에 십상이다. 플랫폼 어딘가에 눈을 고정하고, 최대한 내 시야에 쥐가 들어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체 뉴욕엔 얼마나 많은 쥐가 사는 것일까?



뉴욕시, 미국에서 가장 쥐 많은 도시

뉴욕시가 드디어 미국에서 가장 쥐 많은 도시 1위를 차지하게 됐다. 해충퇴치업체 <올킨>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미 대도시의 쥐 퇴치작업 건수에 기초해 추정한 결과, 뉴욕시가 지난해와 지지난해 1위를 차지했던 시카고를 제치고, 올해 미국의 가장 쥐 많은 도시로 선정됐다.

하지만 뉴욕시에 얼마나 많은 쥐가 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학자들과 전문가들도 추정치를 쉽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14년 뉴욕 컬럼비아대학은 뉴욕시의 쥐 숫자를 약 2백만 마리로 추정했지만, 지난해 6월 뉴욕시의 추정치는 약 6백만 마리 정도였다.

맨해튼은 물론 5개 보로를 모두 포함한 뉴욕시의 인구는 지난해 5월 기준 약 8백50만 명이다. 다행히 쥐가 사람보다는 많지 않다는 건데, 문제는 최근 뉴욕의 쥐가 늘고 있는지 줄고 있는지 정확한 추세조차 확인이 어렵다는 것이다. 쥐의 왕성한 번식력을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인구보다 더 많지 않을까?

최근 뉴욕시 설치류 관리팀에 신고되는 쥐 관련 민원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3년 만 7백여 건이던 게 지난해엔 만 5천 건을 넘어섰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8천 건을 넘었다.

특히 올해는 지난겨울 폭설로 쓰레기 수거 작업이 늦어지면서 쥐들이 더 번식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겨울엔 더 춥고 훨씬 더 눈이 많이 올 거라고 한다. 쥐들은 사람들이 사는 따뜻한 어딘가에 안식처를 마련할 것이고, 눈 때문에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더 쉽게 먹을거리를 찾을 것이고, 더욱 왕성하게 번식할지도 모른다.

혹시 뉴욕시 쥐 천만 시대가 도래하는 건 아닐까? 끔찍하다.

드라이아이스에 길고양이까지, 쥐 퇴치 총력전

뉴욕시 쥐 퇴치 역사는 지난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지금보다 뉴욕시가 훨씬 더 더러웠겠다. 쥐 숫자가 1천5백만 마리로 추정됐다고 한다.

당시 시장 윌리엄 오드와이어(William O'Dwyer, 1946~1950 재임)는 '설치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쥐 퇴치 작업에 돌입했다.

쥐는 맨해튼 등 뉴욕시의 현대화와 함께 숫자가 줄어왔다. 그러다 1979년 맨해튼 남쪽에서 한 여성이 쥐 무리에 공격을 당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뉴욕시는 다시 시 차원의 쥐 퇴치 작업에 나서게 된다.

1994년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Rudolph Giuliani) 시장은 아예 뉴욕시장실 산하에 '설치류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설치류 아카데미도 만들어 관련 공무원들에게 쥐 퇴치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현 시장 빌 드 블라지오(Bill de Blasio)도 지난해 뉴욕시 쥐 퇴치 관련 예산을 2백90만 달러, 우리 돈 33억 원까지 올려 쥐 퇴치 집중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하지만 쥐 퇴치 프로그램의 운용도 쉽지 않다. 애완동물과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러선 안 된다는 전제도 두고 있는 뉴욕에선, 쥐를 잡는다며 여기저기 독한 쥐약을 놓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야생동물들, 애완동물들을 죽게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래서 다양한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올 들어 뉴욕시는 공원과 녹지 등의 쥐구멍에 드라이아이스를 넣는 박멸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쥐구멍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으면 녹으며 이산화탄소를 방출해 굴속에 있는 쥐들을 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인 ‘길고양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뉴욕 야생고양이 이니셔티브와 함께, 길고양이들을 잡아 백신 접종, 중성화수술 뒤 시의 쥐들이 많은 곳에 풀어놓아, 쥐들이 시를 떠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다각적인 노력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뉴욕타임스는 뉴욕 역사상 거의 모든 시장이 쥐 퇴치 계획을 내놨지만, 어떤 시장도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며 비관적 전망을 하기도 했다.

다만 많은 질병을 옮기고, 전선을 끊고 인간을 공격하기도 하는 쥐 숫자를 줄이고, 해를 덜 끼치도록 관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쥐에게도 너무나 관대한 뉴욕의 환경

매일 맨해튼에 근무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이 세계적 도시가 참으로 '더럽다'는 것이다. 인구 밀도에 비한다면 세계적으로 가장 깨끗한 대도시 중 하나인 서울에 살던 나에게 맨해튼은 일견 더러운 도시다.

서울은 한때 도심을 더욱 깨끗이 만들겠다며, 도심에서 쓰레기통을 아예 없앤 적이 있었을 정도로, 청결에 열심인 도시가 아닌가?

맨해튼엔 건널목마다 쓰레기통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에도 관대하다. 재활용도 크게 강요하지 않아 쓰레기통엔 음료수가 남아있는 일회용 커피잔에, 먹다 남은 피자가 들어있는 종이 피자판에, 쥐가 참으로 좋아하겠구나 싶은 것들이 그득하다.

쥐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 높은 철제 쓰레기통을 쓰고 있지만, 과연 쥐들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싶다. 최근엔 아예 입구가 완전히 봉쇄된 형태의 쓰레기통을 거리에 시험적으로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건물들에서 사용하는 비닐 쓰레기봉투야말로 쥐들의 가장 좋은 먹이 공급처가 되고 있을 것이다.

뉴욕은 노숙자 수가 최대에 이르렀을 정도로 노숙자에게도 관대하다. 노숙자들은 아직 날씨가 완전히 춥지 않은 요즘, 거리 곳곳에 이불을 켜켜이 겹쳐 덮고 누워있기 일쑤다.

즉, 많은 사람의 다양한 요구의 공존을 인정하는 뉴욕은, 청결이라는, 또는 쥐 퇴치라는 목표 하나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뉴욕시 철제 쓰레기통(왼쪽)과 뉴욕시 시범 쓰레기통(오른쪽)
쥐를 너무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지 말기를 권하는, 뉴욕 지하철의 쥐 동영상들을 아래 몇 개 첨부한다. 사실 나도 1번만 보고 더는 보지 않는다. 겨울이 다가온다. 올겨울은 춥단다. 우리 사무실에서도 쥐들의 흔적을 발견한 적이 있다. 9시 뉴스 리포트가 있는 날이면, 겨울엔 새벽 4시쯤 혼자 사무실에 들어와야 하는 나는, 혹시 새벽에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쥐가 뛰쳐나오지 않을까 벌써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