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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찬 기자 :

한, 중 수교 2년 만에 대외 교역량 전세계 3위, 지금 한국과 중국은 실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경제 교류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항에서 이미 천 백여년 전에 한, 중, 일 동양 3국의 교역과 외교를 주도했던 한 한국인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무역왕 장보고입니다. 출신지인 한국보다는 오히려 해외에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장보고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최근 한국화 중국을 중심으로 다시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한, 중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포함하는 이른바 황해 경제권 시대의 막이 열리면서 이미 천 백여년 전에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동양 3국의 통상과 외교를 주도했던 국제 해양인 장보고를 연구하지 않고서는 한, 중, 일 3나라 무역과 외교의 과거는 물론 현재를 논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2만 8천여평의 조그마한 섬 이곳 장도는 완도에 딸린 부속섬이지마는 섬 전체가 사적지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와 같은 토성을 비롯해서 천 백여년 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목책 등 많은 장보고 유물이 있습니다.


김희문 (윈도군 문화원 부원장) :

장보고 청해진 시대 때 외성의 역할을 했고 또 배를 잡아널 수 있는 그런 역할을 두 가지 역할을 했다고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보기에 이렇게 적게 보입니다마는 이걸 안에를 파서 보면 목책과 목책 사이가 전혀 짬이 없이 딱 닿아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밖에 노출된 건 전부 부식이 되고 안에 있던 것만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완도가 장보고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청해진을 세워서 신라 뿐 아니라 일본의 당나라 교역에도 중요한 교통역할을 하지 않았나 이렇게 추정되는데요.”

“예, 바로 이곳이 교통의 요로가 될 수 있습니다. 남쪽으로 터진 이 밑에 보이는 이 항로와 이쪽으로 보면 바로 신기도와 고금도 사이로 툭 터져서 일본하고 터진 해로가 있고 이웃 쪽으로 올라가면 북쪽과 서쪽으로 연결되는 말하자면 해남 월안쪽으로 해서 빠지는 그 항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하고 중국하고 연결짓는 아주 중요한 위치고 바로 저쪽 서북쪽에서 벗어 나면은 해류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황해를 거쳐서 저쪽 말하자면 웅진반도 그 반도에서 다시 돌아서 산둥반도를 거쳐서 이렇게 우회하는 그 해류를 타고 산둥반도로 가는 좋은 항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이곳이 청해진이 설정하는 근본 요소가 될 수 있는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희찬 기자 :

당시만 해도 당나라는 물론 섬나라 일본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역풍 속에서도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배를 만들어 갈 짓자 항해술을 부릴 수 있는 장보고의 도움 없이는 외교 사절이나 상인들이 창해 바다의 높은 파도를 넘을 수 없었습니다.


최태영 (학술원 회원) :

이거는 당나라를 가지를 못해요 항해기술 발달이 안돼서.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신라 선원이 들어가야 갑니다. 신라 배를 타고 가지 않으면 한번 갔는데 신라사람 60명을 선원을 가지고 고문, 통역, 안내 둬 다 해가지고 배가 갔으니까요. 그걸 보면은 장보고라는 사람이 항해에 대한 실력이 대단하죠.


이희찬 기자 :

이와 같은 사실은 장보고에 전적으로 의존해 중국을 건너갔다 온 일본인 승려 옌닌의 입당구법 순례행기에 소상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문화재 연구소는 지난 89년부터 완도의 장문섬 죽 장도 일대와 참자리 법화사터 주변을 집중 발굴해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김성배 (청해진 유적발굴단) :

1991년부터 이곳 장도를 발굴 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서 통일 신라 시대의 유물인 주름무늬 점판을 비롯한 토기편들과 그리고 청자편들 그리고 기와편들이 출토되어서 당시의 생활상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희찬 기자 :

장보고는 9세기 초 당나라 무령소장 지위에 오르고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하남성, 절강성 일대 30여곳에 신라방과 신라소를 설치했습니다. 신라인이 집단생활을 했던 곳으로 장보고가 관할하는 일종의 자치지역이었습니다.


최태영 (학술원 회원) :

한국 사람의 근거지를 만들었어요. 요새 말로 하면 재단입니다. 만들어서 그때는 땅이래야 되니까, 들에서 치중하는 땅을 사고 거기다 구철소 옆에 재단에다 거기다 우리 민단이 멜 수 있는 공화당을 짓는 거에요. 그게 바로 적산원입니다.


이희찬 기자 :

KBS 취재진은 중국의 이와 같은 사적을 담기 위해 장보고가 개척했던 항로를 따라 나섰습니다. 물론 중국까지의 해양 실크로드는 이제 만톤급 여객선이 연결시켜 줍니다. 장보고의 후예들은 더 질 높은 교역중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서상희 (골든부리지호 선장) :

한국을 찾는 교포들이나 또 즉 말하자면 한약제나 한약을 가져 온다든지 이런 장사를 하기 위해서 단순하게 한국을 방문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한국하고 중국과의 사업 관계라든지 이런 관계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여기 산동반도에 우리나라 공장들이 진출해 있습니다.


이희찬 기자 :

인천항을 떠난 지 16시간 만에 중국 산동성 육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배는 인천에서 산둥성 위해시 사이를 일주일에 두 번씩 오가는 만톤급 여객선 입니다. 완도가 한국에 있는 가장 확실한 장보고 사적지이듯이 법화원이 있던 산둥반도 영성 적산은 중국에서 장보고 채취를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유적지입니다. 일본풍인 관음보살상이 눈에 거슬렸지만 정원 오른쪽에 있는 연자방아 맷돌의 문양은 분명 완도 장군섬의 맷돌과 똑같습니다. 장보고의 근거지임을 증명해 줍니다. 이곳 법화원에서 바로 5백여미터 위치한 야산 기슭에 장보고 기념탑이 세워 집니다. 마을 노인들이 자진해서 민속 농악으로 흥을 돋우는 가운데 연지 찍은 소년소녀 악단까지 동원 된 이날 기공식은 산동성 영성시, 위해시 부시장 등 고위당국자가 대거 참여했습니다.

“장보고 대사의 업적은 선생님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염길무 (영성시 부시장) :

이번 행사를 계기로 양 국민 우호가 증진되기를 기대합니다.


이희찬 기자 :

그렇지만 한국 측은 성신여대 최민자 교수와 몇 사람의 민간인들만이 참석해 대조를 이뤘습니다.


김원식 (수퍼마켓 연합회장) :

장보고 대사에 대한 오늘 유적지에서 이렇게 탑을 건립하게 된데 대해서는 상당히 감개무량 합니다. 여기에는 특히 최민자 교수가 여성으로서의 그동안 에 9번이나 이곳을 방문하면서 중국 당국과 협조를 얻어가지고 오늘의 이 기공식을 하게 됐다는 거는 하나의 역사로 크게 재조명이 된 계기가 됐다는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희찬 기자 :

2년 전부터 한국 민간단체와 중국 정부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최민자 (세계한민족 연합회장) :

오늘 이 기공식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일시적인 이해관계의 결성이 아니라 우리의 진실한 우정의 결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영충 (범화원 중건위원장) :

양축은 기념탑 건립에 대해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화로 극복 했습니다.


이희찬 기자 :

산둥반도에서 나오는 화강석에다 한국 조각가가 설계한 이 기념탑이 내년 7월 완공되면 산등성 적산 일대는 장보고 기념 공원으로 새롭게 단장될 것입니다.


정관언 (성신여대 교수) :

오늘 우리들이 이 시대에서 볼 때 중국과 한국과의 우호를 다지는 그러한 친선의 어떤 다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싶어서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이 작품을 구상을 했는데 그래서 형태를 조금 설명을 해 드리자면 이것이 5대양과 6대주를 세워서 하나의 전체적인 지구를 상징하는 것이 되겠죠. 거기서 기둥이 2개인데 하나는 중국, 하나는 한국을 그리고 이제 우의를 다진다는 뜻에서 하나의 고리로 이렇게 상징을 해봤습니다.


이희찬 기자 :

한, 중 양측은 장보고 사적지를 영구히 기리기 위해 후속사업도 벌이기로 합의했습니다. 대학에서는 기념탑이 준공되는 내년 여름 장보고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당 고위층의 열의도 놀랍습니다.


진충 (산동대학 부총장) :

기념탑 준공에 때 맞춰 우리 대학은 장보고 학술대회를 영성에서 열 것입니다.


양해강 (위해시 당 서기장) :

기념탑 건립 이후 양국 국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 질 것입니다.


이희찬 기자 :

중국이 이렇듯 민, 관. 학계가 온통 장보고 재조명에 열성을 다하고 있는 것과 요즘 들어 급성장하고 있는 경제력과 어떤 상관관계는 없는가, 정작 장보고 후예들은 지금 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다시 맞은 창해 경제권 시대에 장보고 탐구, 그것은 우리의 몫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