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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기자 :

초겨울로 접어들던 지난 4일, 한국 불교의 최고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성철 스님이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습니다. 성철 스님의 열반 소식이 108번의 타종과 함께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선 애도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몰려드는 조문행렬로 해인사로 이르는 산길은 인파로 메워졌습니다. 해인사 측은 일 주일동안 30만명 이상의 추모객들이 다녀갔다고 밝혔습니다. 추모객들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지면서 해인사는 더욱 숙연해졌습니다.

“너무 슬프고요 너무너무 아쉽죠. 더 살아계셔야 되는데 그러니까 내 다하니까 할 수 없이 가셔야 되는거 아닙니까.”


김명석 (불교신자) :

불교계 위해서 하여튼 많은 저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한이 없지 않습니까.


시명스님(해인사포교국장) :

성철 종정 스님은 어떤 스님보다도 아주 수영력이 특별하셔서 이제까지 근 한 세기에 한 분이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아주 굉장한 스승이라고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박찬욱 기자 :

스님의 입적 직후 종단에선 산중회의를 열어 조계종 통합 이후 최초로 7일장을 치루기로 결정한 뒤 장례준비도 더욱 바빠졌습니다. 편백 나뭇잎과 국화꽃으로 장식된 가로 1미터 10센치미터, 세로 1미터 30센치미터의 대형 영정이 마련됐고 법구를 이운할 꽃상여도 준비됐습니다. 큰스님을 추도하는 글이 적인 2천여개의 대형 만장과 다비식에 쓸 참나무 등도 정성껏 마련됐습니다. 스님이 떠나간 지 일주 일, 며칠 전까지 오색 단풍이 한창이던 해인사 길은 이젠 낙엽만이 뒹굴고 있습니다. 성철 큰스님이 영원히 떠나는 오늘은 하늘까지 비를 뿌리며 슬퍼했습니다. 영결식은 산사의 고요함을 깨는 5번의 타종으로 시작됐습니다. 큰스님을 추모하는 염불소리만이 나즈막하게 들립니다. 스님의 일대기를 알리는 행장 소개, 스님이 남긴 발자취의 크기를 가능케 합니다. 생전의 육성으로 법문이 다시 들려지자 모든 사람들은 더욱 숙연해 집니다. 불교계와 각계 인사들의 애끓는 조사가 이어지면서 영결식장은 추모 의 눈물로 가득 찹니다.


서의현 (총무원장) :

아침 안개와 함께 가십니다. 그러나 그때 타오르는 아침이여 찬란함 그 속에 스님의 미소는 영원히 저희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송서암 (원로위원회 의장) :

10여년 선산을 깨집고 토글에서 장좌불와.


박찬욱 기자 :

극락 왕생을 비는 신도들의 마음은 영결식인 오늘도 끝없이 긴 조문 행렬을 만들었습니다.


윤준호 기자 :

살아서 이미 신화가 됐던 큰스님, 세속 나이 82살 승락 59살로 겨울이 찾아든 해인사 퇴설당에서 입적한 성철 스님은 그 존재만으로도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였고 그 청정한 삶으로 중생을 일깨워온 이 시대의 정신적 사표였습니다. 간결한 법어로 속세의 혼탁한 정신을 일깨워온 성철 스님은 한국 불교 천 6백년사의 가장 치욕스런 사건으로 꼽히는 10.27 범란의 소용돌이가 채 가시지 않은 81년 종정직을 수락하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유명한 법어를 발표하면서 일반에 처음 그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세속의 티끌이 눈에 낀 사람은 산이 산으로 보이지 않고 마음의 눈을 뜬 사람만이 삼라만상이 곧 진리임을 알 수 있다는 이 법어는 일반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89년 해인사 :

아무것도 안 보인다 한 사람은 눈 감은 사람 외에는 어떤 사람이 안 보인다 하느냐 말이여. 그와 마찬가지라.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청청백이고 마음의 눈을 감고 보면 감감한 밤중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여기서 안 보인다 안 보인다 하지 말고 노력해서 마음의 눈을 갖다 있어야 하니라 이말이다.


윤준호 기자 :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직후인 1912년, 지리산 자박인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나 23살 때인 1935년 부도의 길로 들어선 스님은 평생을 산생으로 일관하면서 20여년의 생식과 8년동안 한 번도 드러눕지 않은 장좌볼와의 수행자세로 해이해 진 불교계에 일대 경종을 울렸습니다. 해발 750미터의 백연암의 바위처럼 웅거하며 침묵으로 세상을 질타한 거인, 성철 스님은 우리의 삶 자체가 얼마나 엄청난 업장 덩어리인가를 그 자신의 죄역을 하늘을 넘쳐 수미산을 지나칠 정도로 비유하는 열반송을 남기면서 짧은 생에 긴 감등을 마감하고 해탈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박찬욱 기자 :

영결식장인 대웅전 앞뜰에서 다비장이 마련된 연화대로 옮겨지는 스님의 법구, 법구가 이운되는 동안 관속의 혼을 부르는 산혼착어가 낭송됩니다. 3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는 조객들이 든 2천여개의 만장으로 물결을 이룹니다. 불교 고유의 장례절차인 다비식, 인도어로 화장을 뜻하는 다비의식은 성대함과 장엄함이 특징입니다. 산 언덕배기에 마련된 다비장에는 연꽃으로 장식된 등근 산모양의 연화대가 설치돼 있습니다. 연화대 내부에는 구멍 뚫린 철판이 놓여 있고 위는 콘크리트 재단으로 돼 있습니다. 그 사이 빈 공간에 스님의 법구가 안치됩니다. 장의 위원장과 문중대표 등 스님들이 불경을 독송하는 가운데 불을 높이 쳐드는 거화의식을 시작으로 다비가 거행됩니다. 다비에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10시간에서 12시간, 장작이 다 타고 불이 꺼지면 유골을 추려서 사리를 수습하게 되는 습골절차를 거집니다. 사리를 골라내는 이 절차는 내일 새벽 6시 쯤에 있게 됩니다.


정인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

바로 그 부처님이 열반하신 이후에 부처님과 똑같은 그런 다비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고 불교에서 다비를 하는 의미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 인간은 자연에서 나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비를 해서 모든 육신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그러한 의미가 깃들여 있다고 이렇게 봐집니다.


박찬욱 기자 :

존재와 침묵만으로도 이 시대의 지주였던 성철 큰스님, 오늘 그 비중과 무게를 다시 한번 실감케 하며 붉게 물드는 가야산 단풍을 벗 삼아 열반에 들었습니다.